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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책 '환단고기' 뜻과 내용은?

전종헌 기자
2025-12-17 0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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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책 '환단고기' 뜻과 내용, 위서ㆍ문헌 논란 ©KBS 역사스페셜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역사서 '환단고기'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치권과 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야권의 공세가 이어지며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이번 발언이 학술적 지침이 아닌, 동북아 정세 속에서 역사 주권을 지키자는 포괄적 당부였음을 거듭 확인했다.

이번 논란으로 인해 다시금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른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환(桓)과 단(檀)의 옛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용은 주로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상고사부터 고려 말기까지의 역사를 방대하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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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책 '환단고기' 뜻과 내용, 위서ㆍ문헌 논란

책의 제목인 '환단고기'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환(桓)과 단(檀)의 옛 기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환'은 환인과 환웅을, '단'은 단군을 상징하며, 즉 한민족의 시조와 관련된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책은 크게 '삼성기(상/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5권의 독립된 서적을 하나로 묶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은 기원전 수천 년 전 존재했다는 '환국'부터 시작해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를 거쳐 고려 말기까지의 역사를 방대하게 서술한다.

전승에 따르면 1911년 계연수가 여러 고서를 모아 편찬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1979년 이유립이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까지 약 70년 동안 원본의 실체가 확인된 적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다. 책은 한민족이 과거 광활한 중국 대륙을 지배했으며, 수많은 국가를 거느린 대제국이었다고 묘사해 1980년대~90년대 민족주의 열풍과 맞물려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역사 학계가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책의 성립 시기와 내용에서 도저히 고대 서적이라고 볼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들이 다수 발견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증거는 책 속에 등장하는 근대적 용어들이다. '문화(文化)', '인류(人類)', '산업(産業)', '헌법(憲法)'과 같은 단어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구의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고대나 중세에 쓰인 원전에 이러한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해당 서적이 근대 이후에 창작되었음을 방증한다.

또한 내용상의 모순도 지적된다. 책에서 주장하는 '12환국'의 명칭 중 일부는 중국의 사서인 '진서' 사이전이나 '삼국사기' 등 훨씬 후대의 기록에 등장하는 지명과 겹친다. 특히 고대 국가의 발전 단계나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서술, 즉 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고도로 발달한 국가 체제를 묘사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책의 이름을 '한단고기'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86년 이 책을 번역한 임승국이 "환(桓)은 우리말 '하늘'의 줄임말인 '한'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주석을 달면서 퍼진 주장이다.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볼 때 이는 타당성이 결여된 해석이다. 중국의 고대 운서(韻書)인 '당운'이나 '광운'을 살펴보면 '환(桓)'의 발음은 명백히 '호관절(胡官切)'로 명시되어 있어 '환'으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한'이라는 발음은 근거 없는 견강부회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문가들은 '환단고기'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외세에 억눌린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했던 굴절된 욕망이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분석한다. 역사적 사실(Fact)이 아닌, 당위와 바람을 역사로 포장하려 했던 20세기 민족주의 사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학계는 검증되지 않은 위서를 맹신하는 태도가 자칫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조장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